토요인터뷰 : 장종완의 유토피아


장종완의 회화는 알 수 없는 축축함과 기이함 속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그가 상상하는 세계는 인간이 갈구하는 알 수 없는 무엇에 대한 뒤틀린 욕망과 희망으로 가득찬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장종완이 풍자하는 인간사, 세상사의 신념과 종교의 맹목성은 백일몽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서사로, 그의 작업 세계에서 여러 단편들로 등장한다. 우리는 그가 만들어놓은 어처구니 없는, 섬뜩한 풍경들에 왜인지 모르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빠져든다. 길 바닥에 굴러 다니는 전단지에 인쇄된 낙원을 꿈꾸는 삽화처럼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이 우리 앞에 ‘예술'이라는 형태로 말을 건다.





작업실 풍경, 서울 © 장종완



Q. BGA 초기 컴필레이션 [그림을 즐기는 다섯가지 방법]에 수록되었던 작업 <참회하는 당나귀>(2018)는 독자들에게 신선하고 충격적인 그림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숲속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있는 당나귀는 문득 작가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회하는 당나귀>, 2018, Oil on linen, 181 x 110 cm  © 장종완



장: 의인화된 작업들은 주로 2018년부터 진행하기 시작했다. <참회하는 당나귀>(2018)는 숲을 대상으로 나를 둘러싸고 싶다는 생각과 숲에 대한 원경, 전경 등 다양한 시점과 초현실적인 상황, 연극적인 상황을 그렸던 시기였다. 2017년도에 갤러리에서 전시와 전속 계약을 하는 등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반면, 수동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나 자신과 냉혹한 현실에 부딪혔었다. 이 그림은 침잠되어 있던 나의 상태와 이전의 삶을 경건하게 반성하는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반영하고, 작가이자 인간으로서의 삶을 돌아봤던 시기로 수행하듯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는 작가들은 자기를 담아내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의도하지도 의식하지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 그림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식물이 나와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해준다. 나는 작품 속에 희화화된 대상과 내가 닮아가는 걸 보며 자학과 자폭의 쾌감을 느낀다.



Q: 가족을 꾸려가는 작가로서 임하는 현실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어떤 시간 분배와 노력을 하는지 궁금하다. 장종완의 작업 루틴은 삶을 지탱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며, 작업에 직접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장: 작업은 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마치 입시미술 시험을 보듯이 전투적으로 붙잡고 진행한다. 나는 규칙적으로 작업에 몰두하는 것을 선호한다. 지속적으로 루틴이 쌓였을 때 마치 자동차가 예열되어 치고 나가는 느낌처럼, 이 지점을 향해서 작업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전 세대와 다르게 결혼한 또래 작가들은 나와 비슷하게 아내와 유연하게 시간을 분배해서 각자의 일과 육아를 나눠서 하는 구도가 잡혀있다. 어쩌면 이건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가능한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짧은 편이라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목표량에 도달하지 못하면 속이 많이 상한다. 그래서 좋아하던 술자리도 많이 줄이고 쓸데없이 힘이 소진되는 일은 지양하고 있다. 내 경우에는 운동선수처럼 일정한 루틴을 가지고 작업할 때 작업의 퀄리티가 잘 나오는 것 같다. 올 겨울도 몸과 마음에 현대미술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부지런히 동계훈련 중이다.




작업실 풍경 © 장종완



Q: 작품에서 종종 작은 동물들이 구도자나 선지자 흉내를 내는 장면들이 있다. 인간 대신 동물을 선택하는 이유와 그 기준이 있는가? 주로 이 장면들을 어디서 참조하는가? 



L 심사정_절려도강

R <동쪽에서 온 여우>, 2019, 장지에 아크릴릭 과슈, 194 x 130.5cm © 장종완



’잠자는 숲속의 공주’ 중 한 장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장: 동물을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오랜 기간 축적된 개인의 취향이다. 학부때 곤충, 불교 등 종교 관련 도상을 많이 차용했었다. 나는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서 동물이 인간을 흉내내는 섬뜩함과 낯섦, <톰과 제리>의 제리처럼 악랄하게 구는 섬뜩함 등 대비되는 느낌을 많이 사용한다. 동물들이(특히 설치류같이 귀여운) 인간의 악랄한 행동을 따라 하는 장면을 볼 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쾌감과 섬뜩함이 좋다. 이런 느낌은 내가 작품에서 추구하는 블랙코미디와 맞닿아 있다. 내 작업은 ‘불안'이라는 요소가 작업 이면에 깔려 있다. 소설 『인간실격』,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에서 영감을 받아 부조리극의 상황들을 작업에 녹여낸다. 종종 내게 그림을 그려 나가는 과정은 인간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 같다. 특히, 육아를 하면서 인간이 태어나 성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목격해 나가는 부분들이 신기하고 놀라우면서도 나약함 등이 기저에 깔린 인간의 근원적인 요소를 작업의 소재로 가져온다. 나아가, 내가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동물의 선지자의 모습은 선전화에서의 구도자의 모습들과 유사하다. 책, 인터넷 리서치, 선거 시즌이 되면 정치인들이 시장 상인들을 안아주는 장면 등의 이미지 정치 구도와 독재국가의 기념비적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작업 안에서 중앙 집중적 구도와 대칭적 구도로 표현하기도 한다.




L <땀 흘리는 개구리>, 2015, Oil on lamb skin rug, 80 x 55 cm  © 장종완

R <Organic Farm> 전경 이미지, 2017, 아라리오갤러리 © 장종완



Q: 2015-16년에 ‘가죽 회화' 시리즈가 많이 제작되었다. 사슴, 양가죽 등 동물의 살가죽 안쪽 표면을 바탕 삼아 종교에서 그려지는 창세기와 지상 낙원, 지옥의 풍경들을 보여줬는데, 죽은 동물의 가죽은 종교적 장면들이 통용되는 클리셰함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장: 2015-16년에 진행했던 작품 속 주된 키워드는 ‘믿음’, ‘불안', ‘희망'이었다. 믿음을 키워드로 작업할 때 종교적인 도상의 차용은 진부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나의 작업에서 이야기하는 믿음의 대상은 종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술이나 스포츠, 부동산, 인간, 이데올로기 등으로 확장한다. 당시 가죽 회화는 맹목적인 믿음의 광기와 그것이 지나간 이후의 허무함과 스산함을 죽은 동물의 가죽과 내피에 그려진 회화의 대비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사슴 가죽이 벗겨지는 등 죽기 전에 생전의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인간이 누리는 안락함이 잔인해 보인다는 것을 드러낸다. 아버지가 배를 타시는 분이었는데, 호기심에 타지에서 여러 동물 가죽을 수집하셔서 집에 있는 낡은 가죽들을 예술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죽 회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간혹 지인으로부터 기증받거나 공장에서 가공하고 남은 가죽들 킬로그램으로 팔아서 받아와서 다시 동물 모양으로 재가공해서 재료를 구한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로드킬 당한 동물을 발견한 지인이 연락이 오기도 했었다. 물론, 거절했다.



Q: 독특한 소재와 키치한 구성에서 아이디어를 어떻게 가져오나? 작업 과정에서 어떻게 준비하고 몰입하고 완성시켜 나가는지 궁금하다.


장: 작업 시기마다 영향받은 매체와 이미지의 종류가 다르다. 예전부터 ‘이건, 내 취향의 이미지야’라고 분류한 것을 보니 대부분 키치한 무엇으로써 왜 내 취향은 ‘B급'으로 분류되는지 자문했던 적이 있다. 초기작에는 주로 현대 종교화(전단지)나 선전화를 많이 참조했다면 요즘은 동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다. 종종 과거에 진행했던 작업들을 꺼내보는 시간을 보내면서 눈에 다시 띄는 게 등장 요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다시 펼쳐 나간다. 예로, 2019년 공간 ‘보안여관’에서 가졌던 장준호 작가와의 협업은 2014년에 그린 작품들 중 의인화된 인삼에 주목해 이를 조각가와 함께 발전시켰던 것이다. 근래 그리고 있는 민들레 시리즈 역시 2019년에 작업한 여러 그림들 중 하나인 민들레를 끄집어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해보고 있다. 이처럼, 수집했던 요소들이 눈에 밟이면 캔버스에 어떻게 서로 녹아낼 수 있는지 폴더에 재분류한다. 특정 구도가 맞아서 반복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다 보면 구도를 의식적으로 원경, 근경 등 끊어내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L <인삼커플>, 2014, 종이 위에 색연필, 32x23cm © 장종완 

R 증평 인삼 조형물


Q: 당신의 그림 전반은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관의 절대성에 대한 의문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의문들은 작품 속에서 실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로 대체되지만, 희망차면서도 가짜인 풍경이 어딘지 모르게 섬뜩하다. 이 섬뜩함을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장: 엉뚱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처음 패밀리 레스토랑을 갔을 때 영어 이름 명찰을 단 직원이 무릎을 반쯤 꿇고 과하게 친절한 미소와 말투로 나를 대했을 때의 낯섦과 불편함을 잊을 수가 없다. 한동안 이 느낌을 그림에 어떻게 담을지 늘 고민하며 지냈었다. 내가 그리는 낙원의 풍경이 이와 비슷한 느낌인 것 같다. 낙원을 그릴 때 계속 오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선전화, 종교화는 과한 행복과 친절에 대한 불편함과 유사하다. 나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정체 모를 섬뜩한 감각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어렸을 때 가장 인상깊었던 신문기사에 대한 것이다. 배우들의 눈코입 등 외모에 대한 장점을 모아서 콜라주를 한 사진이 있었는데 괴물 같은게 탄생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작업을 하면서 그 기사의 사진이 머릿 속에 깔려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이상적인 것을 꿈꾸면서 실현을 해 나가는 인간의 태도와 그에 반응하는 반작용들이 터져 나가는 것들에 대한 지점이지 않을까? 어떤 역사적인 반복의 상황들일지도 모르는 인간의 행동은 작업 속에서 일보 전진한 것 같지만, 다시 후퇴해 버리는 아이러니한 모습들에 주목해 작업에서 섬뜩함으로 나타는 것 같다.


 


Q: 2020년 전시 <휘슬러(The Whistler)>(갤러리 이알디)에 참여하면서 사냥과 소년, 꿈을 키워드로 작업에 대한 ‘순수한 태도’의 작업들을 선보였다. 장종완의 유년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휘슬러(The Whistler)> 전경 이미지, 2020, 갤러리 이알디, 사진: 이의록



장: 나의 첫 번째 꿈은 경찰이었고 그에 이어 등반가, 탐험가, 만화가였다. 어렸을 때 공단과 자연이 충돌하는 이상한 곳으로 이 둘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도시에 살았다. 학창시절, 에베레스트에 등반해 유명했던 허영호 대장님을 존경하면서 근처에 있는 산과 바다로 혼자서 캠핑을 자주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대한 자연을 탐험하는 건 어마어마하게 번거로운 일인 걸 눈치채고, 비염이 심했던 탓에 히말라야 같은 곳에 가면 코만 실컷 풀고 올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어 그 꿈을 접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꿈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자연을 동경하고 또 작품 속에 팔할 이상을 차지한다. 가끔 숲을 그린 큰 페인팅에 둘러싸여 있으면 유화 냄새가 묘하게 피톤치드 느낌이 날 때까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어떤 지점의 순수함은 마치 단단하게 형성된 장기 같은 느낌으로 작업에 발산하기도 한다.




수미산 (Mt. Kailash): 불교의 성지 중 하나이며 작가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설산


Q: 가장 최근에 작업했던 <팬데믹 별자리>(2020) 시리즈는 현재 코로나의 시대적인 질병과 연결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작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장: 코로나가 터지면서 전 인류가 기억해야 될 이 순간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나는 큰 사건이 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숙주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잡아 먹고 있는 종, 코로나로 관리가 안되는 동물들이 쓸쓸하게 죽어가는 모습 등 인간과 동시에 동물들이 고통받는 모습에 관심을 두게 된다. 예전처럼 묵혀놓고 응시하지만 않고 시대적인 사건을 그림에 박제하려고 한다. 별자리로 표현한 이유는 우아하게 박제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인지, 별자리를 동물의 형상으로 각인하는 태도로부터 별자리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오늘의 사건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함이다. 불안이 만연한 곳에서 번지는 이상한 믿음과 광기들 그리고 여전히 고통받는 자연과 그들의 역습을 별자리로 박제해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했다. 이번 사태가 진정되면 좀 더 심도 있게 이 이야기에 접근해 볼 계획이다.




<팬데믹 별자리 3>, 2020, Oil on linen, 53.2 x 45.6cm  © 장종완



Q: 회화와 함께 진행했던 영상 작업은 기존에 그렸던 그림과 어떻게 다른가? 


장: 회화와 영상 두 매체는 항상 교집합을 유지한다. 나의 회화와 영상은 서로에게 끝없이 단서를 제공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며 각각의 매너리즘을 상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 꿈이 만화가이기도 했는데,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 쉽게 다루기 어려웠어서 전시가 없는 시즌에는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애니메이션 작업을 몰두해 왔다. 나는 나의 회화 작업들을 이용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배경으로 사용하는 등 유기적으로 서로 중첩 시키는 방식을 조금씩 진행하고 있다. 영상 <250km>(2013)는 파노라마 풍경의 영상 작업으로 풍경들을 수집해서 조합하는 방식은 비슷하나 아웃풋의 방식은 다르다. 최근에 제작했던 영상은 시민청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애니메이션으로, 과거 만들었던 작업을 결합해서 여섯 개의 채널로 구현한 것이다. 이 영상은 회화에 등장했던 오브제를 3D 프린터로 출력해 움직여 가면서 스톱모션으로 촘촘히 제작했으나 코로나로 상영이 불발되어 다음 개인전에 전면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인터뷰 ㅣ 추성아



<250km>, 2013, 싱글채널 비디오, 스테레오사운드, 11분 47초 © 장종완




BGA에서 소개되었던

장종완 작가의 작품과 에세이




작품 <참회하는 당나귀>에 관한

필자 아윤의 에세이 「그림의 온도를 느끼다」 읽기


작품 <그르르르>에 관한

필자 시심나의 에세이 「배부른 불행」 읽기


작품 <NMLR-6>에 관한

필자 김이녁의 에세이 「피닉스」 읽기


작품 <NMLR-10>에 관한

필자 홍태림의 에세이 「와룡산」 읽기


작품 <NMLR-17>에 관한

필자 손현선의 에세이 「나와 함께 춤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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