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터뷰 : 호상근의 복잡한 마음


작가 호상근은 일상에서 소재를 끌어내는 기묘한 재주가 있다. 그는 우리의 발밑에 밟힌 보잘 것 없는 사물, 혹은 일상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소한 장면에 눈을 밝힌다. 우리가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사물과 순간의 장면들을 핸드폰에서 화면을 캡처하듯이 기똥차게 캐치해 가장 ‘호상근스러운' 그림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한때 을지로 소재의 작업실 “호상근재현소"에서 서울살이를 했던 그는 지금 독일에 머물고 있다. 지금의 그는 어떤 일상의 흐름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해졌다.

 


호상근 작가 사진 © 김주원




Q: 이전에 지내던 서울 을지로 작업실을 “호상근 재현소"라 부른 것으로 알고있다. 호상근의 그림은 단순히 일상의 재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어떻게 생긴 이름인가? 


호: “호상근 재현소"는 2012년 ‘꿀풀'이라는 공간에서 처음 시작했고 현재까지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이름이다. 내가 하는 것은 ‘재현'하는 것이고, 무언가 사무소 같은 느낌으로 이름을 짓고 싶었다. 재밌는 것은 ‘호상근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호'씨가 일단 잘 없고 ‘상근'이라는 이름이 항상 근무하는 뜻으로 먼저 와닿는지 사람이 이름이 아니라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호상근 재현소”는 내가 본 것과 네가 본 것 이 두개를 나눠서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그리는 것들이 호상근 재현소에서 나는 작업들이다. 

즉,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는 프로젝트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호상근 재현소를 통해서 나온 그림들은 내가 직접 본 것들이 아니다. 호상근 재현소를 통해 내가 살아온대로 보는 것이 아닌,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보고 싶었다. 일례로, 재개발을 하기로 한 아파트가 집값이 올랐을 때 팔고 나온 사람과 재개발이 발표 되기 전에 팔고 나온 사람들의 마음이 다르듯이 (극단적인 예이긴 한데) 각자가 느끼는 다른 감정과 교차되는 다양한 시선을 보고 싶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상대방이 구사하는 이야기의 서사들 중 흥미로운 지점들을 그리게 된다. 그리고 이 그림들은 매년 ‘오픈 스튜디오’이자 ‘전시’라는 형태로 공개하는 자리를 마련해 왔다. 이래저래 운이 좋게 호상근 재현소는 일민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페스티벌에서도 보여주는 기회가 있었다. 



“글, 말, 그림 중 제일 잘 하는것이 그림이다.”






호상근 재현소 사진 © 호상근




Q: 그림은 주로 종이에 연필과 색연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히 색연필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까? 과슈, 아크릴 혹은 유화, 캔버스 등 다른 재료와 어떤 차이가 있나?


호: 이전에는 주로 큰 스케일의 캔버스에 유화 작업을 했었는데, 예전에 쓰던 지하 작업실이 침수가 되면서 작품들을 모두 버리게 된 사건이 내게 큰 충격이었다. 작업하는 사람들에게는 작품이 전부인데, 침수되면서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또, 캔버스 작업을 하면 그림 앞에 오래 있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큰 작업들을 안하게 되기도 하고, 남한테 피해가 안가고 이동하면서 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림의 크기가 작아지게 되었다. A4 사이즈, 커 봤자 B4 사이즈였다. 그리고 붓을 쓰는 것과 색연필을 쓰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것이다. 색연필은 방법적인 이기심일 수도 있는데 특정 색을 뽑기 위해 어떤 색 위에 어떤 색을 올려야 하는지 그려지는데, 유화나 수채화는 너무나 다른 얘기가 된다. 


Q: “호상근 재현소"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호: 호상근 재현소를 처음 시작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인데, 어떤 할머니가 친구들하고 한강 잔디밭에 누워 있다가 보셨던 장면이다. 지나가는 어떤 아주머니가 검정 손수건을 펼치더니 얼굴에 얹자 마자 떨어지지 않을 속도의 잰 걸음으로 석양을 바라보면서 걸었다는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나이 드신 분들의 귀엽기도 하고 가까이 있으면 피곤하기도 한 행동들, 기억나는 것은 그런 이야기다. 어르신들이 하는 행동들이 자기 삶에 쌓인 노하우 같은 것이라고 봤을 때, 손수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속도를 내면서 운동도 하고, 동시에 햇빛도 가리는 별거 아닌 지점과 태도들이 흥미롭게 와 닿았다. 생활의 달인처럼 각자의 노하우 같은 것.


재현소와 별개로, 구니키다 돗포의 <무사시노 외> 중 단편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주인공이 유스호스텔에 머물며 기억나는 인물을 글로 남긴것들인데, 이처럼, 아무래도 기억나는 사람과 장면이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주가 되는 이야기보다는 중간 중간의 어떤 장면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 순간들을 그림으로 미련하게 계속 그리고 있다.



<바람만 있으면, 됩니다> 2012, 엽서 위에 연필, 색연필 © 호상근




Q: 그림에 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동물도)이 자주 등장한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씁쓸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해서인지, 호상근의 그림은 ‘블랙유머’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 호상근의 시선을 끄는 것은 무엇인가?


호: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보면 야생에서 암컷보다 수컷이 더 크고, 화려하고, 풍성하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나온다. 어느날 이런 다큐멘터리를 본 뒤에 을지로 작업실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종로에 내렸을 때, 그곳에 계신 아저씨들의 화려한 모습이 불현듯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과 연결된 적이 있다. 잠깐 사이에 봤던 것들 때문에 평소 보지 못한 모습과 장면들이 보이게 되는 것이 있다. 


Q: 몇 년전 인터뷰 중에 했던 말인 “저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립니다. 보시는 분들이 웃는 모습보면 기분 좋습니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작가 호상근의 복잡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무엇인가?


호: 어떤 상황과 상대에 대해서 연민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뭐라고 이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가 싶기도 하다. 때로는 내가 냉소적인 마음으로 접근해서 그렸는데 사람들이 따뜻하다고 하는 경우 혹은 웃기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재밌게 보는 경우 등 복잡한 마음들이 그림 속에 드러나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이런 복잡한 마음과 반응들 때문에 최대한 많이 그려서 이런 것들을 끄집어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지배적이다. 


Q: 호상근이 보냈던 을지로 작업실에서의 시간은 작업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호: 2009년까지 서울에서 살다 경기도로 이사한 이후로는 을지로 작업실로 왔다갔다 하며 지냈다. 을지로에 있으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쓰는 종이같은 재료가 바뀌는 것이다. 보통 작업을 하다가 무엇을 그려야할지 고민하는 시점이 왔을 때 마다, 무언가를 찾아내기 보다 창밖에 보이는 남산(타워)을 보았다. 모네가 시간대 별로 그렸던 <루앙 대성당>을 잡는다는 심정으로 문득 멀리 보이는 남산 타워를 해가 질 때까지 그렸던 적도 있다. 평소 특정 사건에서의 사람, 사물만 그리다가 이때를 기점으로 풍경 그 자체에도 초점을 두게 되었다.




<남산과 날씨 04, 12, 16> 2017, 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 © 호상근




Q: BGA 컴필레이션 <아, 입이 없는 것들>에는 호상근 작가의 흥미로운 드로잉 <주차금지 시리즈 모음>이 “사물의 종착지" 라는 제목의 에세이와 함께 수록되었다. 혹시 드로잉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호: 다양한 모양의 주차금지 조각들은 대로보다 골목 안쪽에서, 주택이나 빌라형태의 건물이 많은 곳에서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주차를 고려하지 않고 건물들이 들어서서 나오게 된, 어떤 개인들의 상징물 같기도 하다. 그 동네 주민이 아닌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돌이나 화분, 의자, 더 나아가서는 폐품처럼 보일수도 있으나 그것은 적어도 그 동네 사람들끼리는 누구 것인지 알 수 있는, 이 자리는 누구의 자리다 라는 것을 알리는 표식, 조각이기도 하다. 가만히 바라보면 만드는데 굉장히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멘트를 개어서, 어디서 타이어를 주워 와서, 또 다른곳에서 무거운 돌을 가져와서 결합시키는 조각을 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귀엽기도 하고 자리에 대한 욕망도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






© 호상근, (1) 문래동 (2) 경리단길 (3) 을지로 1가 (4) 상수역 근처 (5) “연트럴 파크"라고 불리는 곳 (6, 7, 8) 무대륙, 엔트러사이트 근처 (9) 홍대입구역 인근 (10) 성북동 오뉴월 근처



Q: 호상근에게 그림으로 남기는 ‘기록’은 무엇일까? 


호: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염두하고, 내심 기대하게 되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작업한 것들이 모두 사실에 기반을 두고 그린 것이기 때문에, 후에 역사적 사료로 쓰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가끔 90년대 홍대 거리를 찍었던 별 것 아닌 옛사진들을 지금 보면 정말 재밌는 것처럼, 그때 당시에 그곳에 뭐가 있었고 어떤 것이 유행했는지 등 자료가 되는 순간들 처럼 내 그림도 언젠가 어떤 사료로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Q: 지금 독일에 있다고 했다. 어떻게 독일에 거주하게 되었는가? 서울에서 했던 작업과 달라진게 있다면 무엇일까?


호: 지금 독일 브라운슈바이크(Braunschweig)에 있는 미술대학 쿤스트 호흐슐레(Kunsthochschule, HBK)에서 진행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브라운슈바이크 프로젝트(BS PROJECT)”에 지원해서 올해까지 있게 되었다. 작업에 있어서는 같은 접근을 하고 있으나, 환경이 바뀌다보니 그리는 대상이 달라진다. 그동안 이미지만 도려내서 그려 왔다면 이제는 웬만하면 배경까지 다 그리려고 시도해 보고 있다. 여기서도 “호상근 재현소”를 하고 싶은 이유는, 이곳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통해 어렴풋이 내가 알 수 있는 것들, 알게 되는 것들도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서 내가 또 다른 눈을 갖게 되는 것을 막연히 기대하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독일에 최적화된 호상근적 모먼트가 되지 않을까? 글. 추성아 독립큐레이터




왼쪽 <보옴 여럼 가을 겨울> 그림책 © 호상근

오른쪽 독일 풍경  © 호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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