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터뷰 : 유재연의 블루타임


작가 유재연에게 하루는 걷기에서 시작하여 걷기로 마무리된다. 그녀가 목적없이 배회하는 밤 산책은 자신의 회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시간이며, 잠시나마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도시를 배회하는 현대인들은 서로의 풍경 속에서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관찰당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군중의 일부이면서 관찰자로서, 밤에 공원을 걷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낮보다 밤에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도심 속 산책자를 밤과 푸른 달, 기이한 풍경으로 포착하는 힘은 무엇일까?






사진, 스튜디오 유재연, 런던 © 유재연




Q: 유재연의 회화 작업은 온통 블루다. 울트라마린, 코발트 등 푸른 색으로 가득하다. 무엇이 이 색에 끌리게 만들었고 작업 전반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Night Walker>, 2018, Oil on canvas  © 유재연


유: 런던에서 처음 <Night Walker> 연작들을 시작했을 때는 다른 일들을 많이 하는 시기였다. 작업만 하면서 생활 할 수 없어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니고 여러 파트타임 일을 했었다. 그래서 작업실을 오가는 시간은 대부분 일을 마친 늦은 시간이 되기 일쑤였다. 작업실에서 집으로 올 때는 공원을 통과하면 집에 더 빨리 도착 할 수 있었기에, 간혹 10시 이후에 통제된 공원 입구의 담을 넘어 다닐 때도 있었다. 아무도 없는 도심 속 자연의 낯선 모습과 밤에 대한 이미지가 자연스레 각인된 것은 공원을 걸어다니던 바로 그때였던 것 같다. 해가 넘어간 직후, 오렌지 빛 햇살이 만드는 푸른 그림자들이 길어지다가 결국 서서히 사라지며 완벽한 밤으로 넘어가려 하는 그 시간대. 여전히 공기 중에 약간의 빛을 머금고 있는 듯 한 그 파란 시간대를 나는 ‘블루타임'이라 부른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맞이한 ‘블루타임’의 순간들과 밤에 홀로 걷는 것에 대한 기억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그 시공간의 경험이 취합되었다. 그렇게 <Night Walker>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Q: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만 보()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하루에 꽤 많은 시간을 걷는데 그 하루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낮에 이동하면서 걷는 것과 밤에 목적없이 걷는 시간은 작업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유: 런던에 살기 시작하면서 그 전보다 걷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대중교통보다 걷는 것이 편하기도 했고, 느린 템포의 삶에 익숙해져 간다는 자신으로부터의 어떤 신호 같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작업실까지, 그리고 일터까지 걸어 다니는 그 시간들이 어느새 나의 루틴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 휴대폰을 보니, 자연스럽게 이만 보의 걸음이 찍혀 있었다.

낮에 걷는 사람들과 밤에 혼자 걷는 사람들에 관한 대비가 분명하게 작업에 영향을 줬다. 런던은 관광객이 정말 많은데, 내가 거주하고 작업하는 곳은 관광지와 가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다수의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나처럼 일터에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스케이트보드 타고 노는 아이들도 있는데, 분명한 것은 낮과 밤에 그룹핑이 되는 지점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낮에는 군중의 형태가 대부분이고 밤에는 그룹핑이 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이동을 반복해서 보다보니 목적과 다르게 산책자와 관광객 즉, 만보객과 투어리즘의 차이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내가 낮과 밤이 아주 다른 공간을 홀로 걸었던 경험은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로 사람이 홀로 등장하는 그림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Q: 런던에 꽤 긴 시간 머물면서 작가 활동을 지속해 왔다. 정작 당신은 관찰한 사람들과 풍경을 화면 안에서 재현하지 않고, 모호한 형태와 상상 속에 발현되는 대상으로 채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마치 현실과 그 이면의 세계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 어딘가에 속한 듯 말이다.


유: 나는 낮과 밤에 걸어다니면서 드는 생각과 봤던 것들을 토대로, 작은 종이에 러프하게 드로잉의 형식으로 기록한다. 아주 빠른 속도로 드로잉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록하고, 이 드로잉들이 모여서 곧바로 작업으로 이어질 때도 있고 조금 묵혔다가 캔버스 위에 옮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 그림으로 들어가는 편이다. 자세하게 묘사를 하거나 꾸준하게 재현을 한다는 것에 대해 집착하면서 드로잉을 만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형태들이나 풍경이 실제 보다 단순해진다. 드로잉을 바탕으로 회화에 옮겨갔을 때 사람에 관한 정보를 배제하고 싶다. 결국 나는 정해지지 않은-시간, 장소성-이 많은 상태를 그리는 것 같다. 한 예로, 내 작업에 등장하는 새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물어본다. 이것 조차 언젠가는 엄마였다가 나 자신이었다가 완벽한 타인이었다가...끊임없이 대상이 변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채워져 있으니까.  




<Wetland Stroller>, 2019, Oil on canvas  © 유재연



Q: <Wetland Stroller>(2019)가 매우 흥미롭다. 이 작업에는 작가 특유의 은밀함과 유머감각이 드러나는데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


유: 이 작업은 움직이는 무덤에 대한 그림이다. 2013년부터 이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 작업의 경우 무덤들이 운다. 비슷한 해에 가까운 가족들과 19년동안 키우던 개의 죽음을 연속적으로 맞이했었다. 누군가가, 이미 떠난 자가 남은 자를 애도하며 지나간다는 생각을 하며 그렸던 것 같다. 

영국사에 대해 쓴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의 책에서 중세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교회 건물들이 주변 땅보다 낮게 박혀 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계단처럼 턱을 넘어서 땅을 밟아야 된다는 얘기는 즉, 교회 주변은 무덤가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묻히면서 자연스럽게 땅 높이가 높아졌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다니면서 보니까 정말 심각하게 낮은 지반 위에 있는 교회들이 많더라. 내가 걷는다는 행위를 강조할 수 밖에 없는게, 대부분 잔디가 깔린 흙밭을 걷게 되기 때문에 비가 내린 후 축축한 땅을 밟으면서 땅에 묻힌 사람들과 동시에 한국의 무덤에 대한 이미지들이 교차된다. 흥미로운 점은, 움직이는 무덤 연작을 그릴 때 이미지 자체가 구체성을 띄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대부분은 모자 ‘캡'을 연상하기도 한다. 무덤인데 경쾌한 이미지로 사람들이 받아들인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반면에, 무덤이라는 오브제에 담긴 사실과 역사들은 무겁지만 형태 자체에서 오는 다른 느낌으로 전복되는 지점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스튜디오 유재연, 런던  © 유재연




Q: 푸른 색과 더불어, 2019년 후반부터 온갖 형광색들이 화면에 뒤섞여 등장한다. 색을 입힌 부분들은 그 요소들을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전체를 환상적이고 기이한 장면들로 만들어내는 듯 하다. 색을 많이 사용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 


유: 기존에 해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무언가를 그릴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행위들의 순서나 기준을 조금씩 바꾸어 본 결과이다. 색면추상처럼 표면에 파란색을 덜 쓰는 방향으로 색들을 입혀 놓고, 즉흥적으로 그 위에 이미지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즉, 빈 캔버스에 올오버(all-over)로 형형색색의 색들을 덧칠한 후에 그것을 지워가면서 형상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으로 그렸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색은 덮여 있고 어떤 것은 밑에서 드러나게 되었다. 사실, 푸른 색 외에 다른 색은 형광 안료는 아니다. 신기하게도 초벌을 할때 원색을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위에 푸른 물감을 얇게 덮히면서 형광색 빛으로 보이는 것 같다.





<Ruby Moon>, 2019, Oil on canvas  




Q: 회화 작업 외에도, 네온 드로잉과 마커 드로잉을 소재로 사용하여 크기를 확장하고 납작한 조각으로 제작하는 유쾌한 실험을 해왔다. 이 작업을 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유: 마커 드로잉을 바탕으로 제작한 컷아웃(cut-out) 회화는 과거에  ‘플레이스막(PLACEMAK)’과 함께한 첫 개인전 <F>에서 처음으로 보여줬었다. 드로잉은 나의 작업과정에서 매우 중요한데, 과정에서 생성되는 러프한 드로잉들이 결과물로서 실제 공간에  놓여지면 어떤 느낌일 지  궁금했다. 보도자료 이미지를 리서치하다가 미공군기 흑백사진에 찍힌 ‘F-16’에 “F”가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해졌다. ‘ Fairytale’, ‘Fury’, ‘Fantasy’ 등 순간적으로 여러 단어들이 연상되었다. 결국은 ‘Fighting’의 ‘F’ 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처음에 다른 단어들을 마구 연상하며 이미지를 떠올렸던 그 순간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떠올렸던 단어들을 리스트화 하여, 그것에 비추어 즉흥적인 드로잉들을 만들었다. 그 드로잉들이 크기가 커지고 두께감이 있는 설치조각으로 변모하여, <F> 라는 제목의 이름 안에 묶인 채, 공간에 여기저기 부유하는 작업이었다. 여러 의미를 생성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이미지들이 공간 속에서 하나의 집합을 이루게 되면서, 더 이상 메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빠른 속도로 그어진 선과 면들이 두께를 가지고 커지면서 공간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에 대한 희열이 가장 컸다. 은밀한 공간에서 진행되었던 작은 드로잉들이 순식간에 분출되는 느낌들에 대한 것이다. 


결국에 회화 작업을 진행하는 것과 이 납작한 조각을 제작하는 것은, 일상에서 꾸준히 해오던 보잘것 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이 다른 식으로 재탄생되는 방법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네온 드로잉의 경우 볼펜 드로잉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었는데, 마커는 선보다 면과 색이 치중된 이미지인 반면에 선적인 이미지는 확대하기에 적합한 재료는 네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Moaning Desert>, 2019, Oil on cut-out plywood, DC motor  © 유재연

<Timer>, 2019, Neon drawing © 유재연




Q: BGA 컴필레이션 <Night, Night - Part. 1>(추성아), <밖으로>(아윤), <삶의 경계를 생각하는 방법>(정지우), <사진과 환상>(김사과) 이렇게 여러 필자들의 컴필레이션에 작가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각기 다른 분야의 필자들이 당신의 작품들을 다양한 시각의 글로 풀어내면서 거꾸로, 이 글들로부터 새로운 작업을 하는데 영감을 받기도 하는지?


유: 나의 작업을 누군가가 재해석한 텍스트로 다시 접한다는 것은 항상 경이롭다. 예컨대, 김사과 소설가의 <사진과 환상> 컴필레이션에 수록된 내 작업을 다룬 글이다. 이 글은 과거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상기하는 듯한 화자의 목소리에 대한 것이어서, 내가 평소에 암묵적으로 인지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굳이 말하지 않은 것들이 일정 부분 담겨져 있는 점이 신기했다. 너무 멀지 않은 과거부터 유년기의 시절까지 모두 떠오르게 만드는 글이었다. 



<;_; (semicolon underscore semicolon)> 책 작업

디자인: 박찬신 © 유재연



Q: 런던에서 오래 거주하고 작업 활동을 하는 작가로서 코로나로 인한 현재 당신의 소소한 일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며, 런던과 한국에서의 시간과 공간은 유재연에게 어떤 온도 차이인가? 


유: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직접 만나지 못한다는 것. 작업실-집의 루틴으로 갈 수 밖에 없고 미술관과 갤러리도 문을 닫으면서 다른 자극을 받을만한 이벤트들이 없었다. 온전히 개인의 위치에서 삶을 사는 것, 어디에나 그렇겠지만 런던이 이 부분이 컸다. 코로나 이후에는 유령도시처럼 텅 비어버린 느낌이 익숙치 않았고 지하철과 강변에서 사람들이 한 명도 없어서 놀랐다. 런던은 코로나 때문에 대중교통을 자제하고 자전거로 이동하기를 권유하고 있다. 모든 행동 반경이 새로운 비히클을 기준으로 변화되고 있는데, 다른 시각의 작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대가 되기도 한다.





 스튜디오 유재연, 런던 © 유재연



런던 하이드 파크 산책 중 만난 어느 겨울의 원더랜드 © 유재연




유재연 작가의 작품 감상하기



<비행하는 압박 쇼> 미술애호가 아윤

<볓이 빛나는 밤을 온전히 누리는 방법> 문화평론가 정지우

<익숙한, 유별난> 큐레이터 추성아

<반려기억> 미술칼럼니스트 알마

<추억의 증거> 소설가 김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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